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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고 싶은 고장 전주, 전주의 아름다움을 살펴보자

한번쯤은 2009. 7. 16. 16:33
너무 좋은 글이 있어 담아 왔습니다. 

전주,  전통의 향기 간직하는 도시 개발의 새 모델


전주, 한국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 개발
공공디자인의 유행에 휩싸이지 않고 중심 잡아 갈 것
도시 개발 계획의 한국적이면서도 고유한 모델로 자리 매김



들어가는 말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외국적인 것의 풍경'에 지쳐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음식에 대한 그리움도 그렇지만 '시야'가 만들어 내는 괴로움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처음에는 외국의 풍광에 반해 이 것 저것 눈에 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한국의 것'을 찾아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국의 이미지를 보고 '시선의 평안'을 얻는다. 단청이 그려진 건물, 한국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구닥다리들, 서양의 고전에 비하면 어딘지 허름해 보이는 단순한 목조건물이지만 익숙한 만큼 우리 마음속 깊숙이 들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한국적인 풍경이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떠오를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란, 일본적인 것과도 다르고 중국적인 것과도 다른 어떤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절도와 중국의 과장 사이에서, 아리랑의 흥과 슬픔 사이 어디쯤에 놓여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인들만의 질서와 세계관이 있었다. '내일 점심나절에 시장바닥에서 만납시다.'해도 한국사람들은 어김없이 만날 수 있었다. 근대화를 지나는 동안 그러나 한국적인 질서와 세계관, 풍경은 얼마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촌스러운 것 쯤으로 여겨지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한국적인 것'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와서 한국을 다시 발견하고, 한국적인 가치를 다시 찾기에 이르렀다. 고무적인 일이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한국인들이 한국적인 것을 이방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즐긴다. 예를들어, 무대 위에 올려진 사물놀이를 '감상'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 덩실 춤을 추고 흥을 돋구지는 않는다. '무대'가 생략된 걸립굿이나 마을굿은 다소 불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서구적인 감수성이 우리를 지배한지 오래, 꽹과리와 장구, 북을 쳐 대는 전통 음악은 격이 맞지 않은 것이다. 한국인이 한국의 것에 대해서 이방인의 시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전주의 경우


전주에 위치한 경기전의 내부 모습,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를 봉안하고 제사를 짓기 위한 어용전(御容殿)이다.
경기전은 전주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아 보는 명소로, 시민들이 더 사랑하는 공공공간으로서 소박한 권위와 평온함을 동시에 지니는 자연공간이다.  
 

   


경기전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 경기전에는 여유와 평화로움이 있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방 도시만의 매력도 있겠지만, 전주 특유의 느린 호흡도 있다. 전주는 다른 도시를 모방하거나 따르지 않는다.  

전주는 그 한국적인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그것을 전주의 특화된 도시성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도시이다. 전주는 한 때(한 때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기억은 공화국을 지나 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대도시였다. 호남의 제일 도시였으며 관문이었다. 서예가인 강암 송성용선생의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 현판이 고속도로 전주 요금소 머리에 걸려있다. 전주는 송하진 전주시장의 말대로 '한국을 보려면 전주에 오면 되는' 곳이 되기 위해서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전주에는 우리가 잃어 버리고 사는 한국의 넉넉함과 여유와 멋을 간직하고 발전 시키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해하면 안된다. 전주는 매우 부지런히, 그리고 다채롭게 움직이는 도시이다. 전주는 매해 최고 실력의 비보이 팀들이 모이는 비보이 그랑프리가 열리는 도시이고, 디지털 영화의 새 화두와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 받는 전주 국제영화제가 벌써 10회에 이르는 도시이다. 섬유와 나노튜브 등 탄소관련 산업의 첨단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는 곳이라 하여 손 놓고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운운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혹자는 전주의 느림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수 십년 수 백년에 걸쳐 이루어진 외국의 도시문화는 입이 닳도록 칭찬한다. 도시 문화가 잘 짜여진 해외 사례의 본질을 살펴본다면 전주시의 호흡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지속가능한 도시'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치 그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양 말하는 일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전주는 길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탄소산업은 탄소를 소재로 이루어지는 나노튜브, 섬유 등 최첨단 환경산업의 통칭이다. 전주는 전통을 기반으로 탄소산업도시로서 첨단 인프라스트럭츄어를 구축한다.

전주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정중동의 도시라는 점이다. 전주는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면서 움직인다. 원칙과 철학은 '한국'이라는 무거운 화두를 유지하면서도 각론에 있어서는 첨단의 감각과 경제적 노련함을 잃지 않는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우후죽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도시 경관 및 공공디자인 사업에 있어서도 전주는 그 특징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주는 벌써 삼년 전부터 '아트폴리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부서를 신설해 움직여 오고 있었다.

 

아트폴리스(artpolis)는 송하진 시장이 만들어 낸 하나의 아이디어(idea)라고 할 수 있다.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실현체였으며 그 자체로 도시를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는 예술과 자유로운 토론, 그리고 광장과 시장이 존재하는 이상에 가까운 하나의 유기체적 질서였다. 아트폴리스라는 이름은 3년 전 전국의 자치단체에 유행처럼 신설되었던 공공디자인과, 혹은 도시경관과 등의 호흡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주는 '공공디자인이라는 작은 화두'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도시의 변화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싶었던 시장의 깊은 모색과 실천이 빛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과 디자인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송하진 시장은 디자이너인 유재갑 과장을 불러들인다. 평소 공공디자인에 대해서 그것이 가지는 버스쉘터나 가로등 바꾸기식의 개별적이고 단발적인 움직임에 불만이 있었던 디자이너 유재갑은 물을 만났다. 아트폴리스과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트폴리스의 가장 큰 특징은 전주다움, 즉 전주의 전통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도시 환경의 질적 개선과 도시공간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공공디자인 사업에 있어서 서구의 모델과 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그것의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여타의 지역과는 이 점이 차별된다. 전주시에 있어서 전통적인 정체성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전주를 이루는 실제적인 오늘의 현실이다. 전주는 한식과 한옥, 한지, 전통무예와 한방까지 한국적인 것이 모여 있는 도시이면서 오늘날에도 그것이 고스란히 그것 자체로 남아 있는 곳이다. 아트폴리스는 이 한국적인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단순해보이지만 이것은 확연한 차이이다. 전통이 부차적인 것이나 수식어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자리 잡고 공공디자인 사업을 펼치는 자치단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주시의 공공디자인 사업의 가장 큰 특색 중 하나는 철거와 신설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그것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데 있다. 전주시는 작고 허름한 한옥에서부터 작은 골목길 하나까지 간직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방식을 택한다. 전주시에 있어서 전통이란 우리 고유의 문화에서부터 근대를 통과하면서 생긴 도시의 크고 작은 추억들까지를 포함한다.


전주시가 옛 건축물뿐 아니라 근대의 건축물에도 이토록 깊은 애정을 보이는 것은 하루 하루 살을 덧붙이듯 쌓여 가는 것이 문화 그 자체라고 믿는 시장과 아트폴리스를 만들어 가는 공무원들 덕분이다. 눈만 뜨면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기에 바쁜 대도시에 공공디자인 사업에 비하면 훨씬 풍요롭고 깊은 마인드이다. 전주는 호화롭고 으리으리한 건물만 늘어선, 그리하여 수 십년 지켜 온 문화라고는 없고, 결국 도시의 특색마저 사라져 버리는 섣부른 공공디자인 사업을 경계한다.

 


실제 한옥을 많은 부분 그대로 유지한 전주시 한옥마을의 정경.


아트폴리스 전주의 로고가 적힌 차량통제 시스템

 
시내 주차장 외벽 파사드(건축물은 그대로 놔둔 채 외벽만을 바꾸는 것, 파사디즘)와 동물원 아쿠아리움


전주시가 현재 계획중인 한스타일 진흥원의 개념도

송하진 전주 시장은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도시"라며 "이런 바탕을 기반으로 결코 서두르지 않고, 진지하고 활기찬 걸음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시장은 또 "공공디자인 사업은 절대로 시장이나 관공서 혼자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함께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속도가 더딜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빠르고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도시 개발과 공공디자인 사업에 있어서 지역민의 참여, 외형의 변화보다 본질적인 삶의 질을 강조하는 송하진 전주시장

전주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공공디자인 사업을 추구한다. 아트폴리스라고 하는 명칭도 그러한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전주의 도시 문화와 디자인의 빛깔은 다른 도시와 화합을 이루면서 또 전주만의 특색을 생각한다. 시장은 공공디자인 사업의 유행과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전주만의 색깔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나오는 말




골목에 내어 놓은 고추가 햇볕을 쬐고 있다. 오래된 담장, 가난의 기억들, 이것들은 언젠가는 헐어버려야 할 어떤 것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삶의 따뜻한 결일까. 도시는 이런 작고 사소한 것들까지 고려하면서 함께 발전할 수 없는 불가항력일까. 연일 쏟아져 나오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개발 계획과 공공디자인 사업을 보다가 전주시의 호흡에서 위안을 받았다.  종로구 피맛길의 '소중한 기억'들을 영상에 담아 보관한다는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발상 말고 그냥 그 자체로 놓아 둘 수는 없었을까. 도시 개발 계획은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아니,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 개발 사업이나 공공디자인 사업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느리고 더디게 진행되어야 옳다. 전주시의 경우이다.


mbn art & design center

글      유호정 기자
사진   이정윤 기자, 전주시청 제공